(구)갤러리
Amy 、2008/04/27 21:54:55조회수 94

[Amy、] ... ' Baracca's Cavallino .. '

Test Drive Unlimited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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.. 나는 기뻐서 울고있지만 내 눈물에는 슬픔 또한 함께 담겨있다 .

' ... 바로 나의 어머니 를 눌렀기 때문이다 .... '

- Enzo Ferrari [ 1898 ~ 1988 ] -


1929년 - Scuderia Ferrari

1939년 9월 - Auto Avio Costruzioni Ferrari

1957년 10월 16일 - Auto Costruzioni Ferrari

1960년 5월 23일 - SEFAC S.p.A

1965년 11월 13일 - Ferrari S.p.A Esercizio Fabbriche Automobili e

Corse

1989년 6월 23일 - Ferrari S.p.A



댓글

2008/04/27 21:56:44
ㅎㄷㄷ

페라리시리즈!!
2008/04/27 22:37:20
.. 나는 기뻐서 울고있지만 내 눈물에는 슬픔 또한 함께 담겨있다 .

' ... 바로 나의 어머니 를 눌렀기 때문이다 .... '

무슨뜻이에요!? 스나이퍼님샷에도 의미심장한말이있던데..
2008/04/27 22:45:12
엔초 페라리가 드라이버시절 속해있던팀이 알파로메오 팀이었을 겁니다. 그 당시 피아트를 이기기위해서 엔초가 알파로메오 팀을 보강하기 시작했습니다. 하지만 그 때 알파로메오는 심각한 자정난에 빠졌다고 하네요. 그래서 엔초는 결국 알파로메오를 떠나게되버렸고 그 이후로 자신의 직접 팀을 만든후 차도 직접 만들어서 레이싱에 출전했다고 합니다. 이것을 토대로 하여서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립해 타치오 누보라리등 일류 레이서들과 기술자들을 끌어들여 성장해 가죠.

Baracca's Cavallino..:) 정성이 담긴 스샷이군요. 추천 +5
2008/04/27 22:47:17
친정이었던 알파로메오를 자신이 만든 페라리가 이기게된것을 비유한 표현이죠.
2008/04/27 22:49:55
까고들잇네ㅉㅉㅉㅉ
2008/04/27 22:56:58
.. 글의 내용을 요약해드릴께요 .. ^ ^

엔초 [ Enzo Ferrari ] 는 1919년 CMN사에 입사하면서 모터스포츠에 인연을맺었는데 ..

이 회사 드라이버로 10월에 열린 ' 파르마 포지오 디 베르세토 힐 클라임 ' 에 출전하게 됩니다 .

이듬해인 1920년에는 당시 이태리 레이스계를 주름잡던 알파로메오로 자리를 옮겨 타르가 플로리오 경기에

출전 , 2위에 올르며 그는 1932년까지 드라이버로 활약합니다 .

1923년 세비오 서키트에서 열린 소규모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엔초는 엔리코 바라카라는 사람을 만나는



1차대전 당시 이태리 최고의 파일럿으로 활약하다 1918년 사망한 프란체스코 바라카의 아버지랍니다 . 그는

프란시스코의 비행기에 그려진 뛰는 말 모양의 상징을 사용하도록 허락하는데 . 이것이 지금의 페라리 엠블럼

이 되었답니다 .

1929년 12월 알파로메오를 떠난 엔초는 '소시에타 아노니마 스쿠데리아 페라리' 를 설립해 알파로메오의 세

미 워크스팀으로 활동합니다.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매니저로서의 역량을 최초로 발휘한 곳이고 , 페라리의 전

신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가됩니다 .

생략 ... 1939년 스크데리아 페라리팀은 해체되고,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와의 관계를 끊고 고향 모데나로 돌아

갑니다 . 그리고 알파로메오와의 계약으로 4년 동안 레이싱카에 자신의 이름을 달거나 생산하는 것이 금지

되었지만 레이싱만을 생각하고 있던 페라리는 1940년 밀레 밀리아 레이스를 위해 스포츠카를 생산합니다 . 8

개의 실린더와 1.5리터의 엔진의 베투라 815 (Vettura 815) 피아트의 부품을 조립하여 만들었지만 엔진 결함

으로 완주하지는 못했다고합니다 .

2차 대전으로 인해 페라리는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공장을 이주해야 했고 . 마라넬로에 약간의 땅을 소유하

고 있던 페라리는 새로운 공장을 짓고 조아치노 콜롬보와 함께 V12 1.5ℓ 엔진을 개발합니다 . 그리고 1947년 5

월 피아첸자에서 열린 레이스에 자신이 직접 개발하고 자신의 이름을 쓴 최초의 레이싱카인 티포 125C를 3대

만들어 출전시킵니다 .

1950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340 America가 데뷔를 하는데 . 람프레디가 설계한 4101cc의 엔진으로 220마력

을 출력을냈다고합니다 . 340 America는 밀레 밀리아를 포함해서 유럽의 많은 레이스에서 성공을 하였지만 ,

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340 America는 미국 시장을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합니다 . 1951년 데뷔한 342

America는 소량이 생산되었고, 그 모습은 250 Europa와 375 America로 이어집니다 . 250 Europa는 1953

년 파리 오토 살롱에서 데뷔를 하였고 , 250시리즈의 선두로 페라리가 GT카들을 생산하는 견인차 소임을 한

모델이라고합니다 .

당시 페라리 모델은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기본적으로 레이싱카를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고성능일 수밖에 없

었다고합니다 . 그의 차 만들기는 레이스 활동자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고 페라리는 F1 시작부터 지금까지

출전하고 있는 유일한 팀일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레이스에 힘을 쏟고 있다고합니다 . 페라리는 1951년 영국

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거두었으며 . 알파로메오를 누른 엔초가 " 어머니를 죽였다 " 고 눈물을 흘린 일화는

유명하다고합니다 .

생략 - ..

... ' 요약한 글이라 .. 이해가 될지모르겠네요 .. '
2008/04/27 23:01:57
.. 그리고 .. 점수 댓글 고맙습니다 .. : )

김철진 / .. 저한테만 자꾸 이러시는이유가 뭐죠 ? .. 1점말고 다른걸원하시는지 ?

.. 잊혀질려고하면 나타나시네요 ..
2008/04/28 0:53:12
Amy, 님 그냥 일종의 관심이라고 보시면 될듯해요
신경 쓰지 말아요 ㅎㅎ
2008/04/28 23:34:19
Amy 、 // 감사합니다~ 팍팍이해가 됬어요 ㅎㅎ; 그리고 김철진은 그냥 다그러니까 무시
2008/04/29 16:21:19
.. ^ ^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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