댓글
2008/04/27 21:56:44 | ㅎㄷㄷ 페라리시리즈!! |
2008/04/27 22:37:20 | .. 나는 기뻐서 울고있지만 내 눈물에는 슬픔 또한 함께 담겨있다 . ' ... 바로 나의 어머니 를 눌렀기 때문이다 .... ' 무슨뜻이에요!? 스나이퍼님샷에도 의미심장한말이있던데.. |
2008/04/27 22:45:12 | 엔초 페라리가 드라이버시절 속해있던팀이 알파로메오 팀이었을 겁니다. 그 당시 피아트를 이기기위해서 엔초가 알파로메오 팀을 보강하기 시작했습니다. 하지만 그 때 알파로메오는 심각한 자정난에 빠졌다고 하네요. 그래서 엔초는 결국 알파로메오를 떠나게되버렸고 그 이후로 자신의 직접 팀을 만든후 차도 직접 만들어서 레이싱에 출전했다고 합니다. 이것을 토대로 하여서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립해 타치오 누보라리등 일류 레이서들과 기술자들을 끌어들여 성장해 가죠. Baracca's Cavallino..:) 정성이 담긴 스샷이군요. 추천 +5 |
2008/04/27 22:47:17 | 친정이었던 알파로메오를 자신이 만든 페라리가 이기게된것을 비유한 표현이죠. |
2008/04/27 22:49:55 | 까고들잇네ㅉㅉㅉㅉ |
2008/04/27 22:56:58 | .. 글의 내용을 요약해드릴께요 .. ^ ^ 엔초 [ Enzo Ferrari ] 는 1919년 CMN사에 입사하면서 모터스포츠에 인연을맺었는데 .. 이 회사 드라이버로 10월에 열린 ' 파르마 포지오 디 베르세토 힐 클라임 ' 에 출전하게 됩니다 . 이듬해인 1920년에는 당시 이태리 레이스계를 주름잡던 알파로메오로 자리를 옮겨 타르가 플로리오 경기에 출전 , 2위에 올르며 그는 1932년까지 드라이버로 활약합니다 . 1923년 세비오 서키트에서 열린 소규모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엔초는 엔리코 바라카라는 사람을 만나는 데 1차대전 당시 이태리 최고의 파일럿으로 활약하다 1918년 사망한 프란체스코 바라카의 아버지랍니다 . 그는 프란시스코의 비행기에 그려진 뛰는 말 모양의 상징을 사용하도록 허락하는데 . 이것이 지금의 페라리 엠블럼 이 되었답니다 . 1929년 12월 알파로메오를 떠난 엔초는 '소시에타 아노니마 스쿠데리아 페라리' 를 설립해 알파로메오의 세 미 워크스팀으로 활동합니다.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매니저로서의 역량을 최초로 발휘한 곳이고 , 페라리의 전 신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가됩니다 . 생략 ... 1939년 스크데리아 페라리팀은 해체되고,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와의 관계를 끊고 고향 모데나로 돌아 갑니다 . 그리고 알파로메오와의 계약으로 4년 동안 레이싱카에 자신의 이름을 달거나 생산하는 것이 금지 되었지만 레이싱만을 생각하고 있던 페라리는 1940년 밀레 밀리아 레이스를 위해 스포츠카를 생산합니다 . 8 개의 실린더와 1.5리터의 엔진의 베투라 815 (Vettura 815) 피아트의 부품을 조립하여 만들었지만 엔진 결함 으로 완주하지는 못했다고합니다 . 2차 대전으로 인해 페라리는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공장을 이주해야 했고 . 마라넬로에 약간의 땅을 소유하 고 있던 페라리는 새로운 공장을 짓고 조아치노 콜롬보와 함께 V12 1.5ℓ 엔진을 개발합니다 . 그리고 1947년 5 월 피아첸자에서 열린 레이스에 자신이 직접 개발하고 자신의 이름을 쓴 최초의 레이싱카인 티포 125C를 3대 만들어 출전시킵니다 . 1950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340 America가 데뷔를 하는데 . 람프레디가 설계한 4101cc의 엔진으로 220마력 을 출력을냈다고합니다 . 340 America는 밀레 밀리아를 포함해서 유럽의 많은 레이스에서 성공을 하였지만 ,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340 America는 미국 시장을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합니다 . 1951년 데뷔한 342 America는 소량이 생산되었고, 그 모습은 250 Europa와 375 America로 이어집니다 . 250 Europa는 1953 년 파리 오토 살롱에서 데뷔를 하였고 , 250시리즈의 선두로 페라리가 GT카들을 생산하는 견인차 소임을 한 모델이라고합니다 . 당시 페라리 모델은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기본적으로 레이싱카를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고성능일 수밖에 없 었다고합니다 . 그의 차 만들기는 레이스 활동자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고 페라리는 F1 시작부터 지금까지 출전하고 있는 유일한 팀일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레이스에 힘을 쏟고 있다고합니다 . 페라리는 195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거두었으며 . 알파로메오를 누른 엔초가 " 어머니를 죽였다 " 고 눈물을 흘린 일화는 유명하다고합니다 . 생략 - .. ... ' 요약한 글이라 .. 이해가 될지모르겠네요 .. ' |
2008/04/27 23:01:57 | .. 그리고 .. 점수 댓글 고맙습니다 .. : ) 김철진 / .. 저한테만 자꾸 이러시는이유가 뭐죠 ? .. 1점말고 다른걸원하시는지 ? .. 잊혀질려고하면 나타나시네요 .. |
2008/04/28 0:53:12 | Amy, 님 그냥 일종의 관심이라고 보시면 될듯해요 신경 쓰지 말아요 ㅎㅎ |
2008/04/28 23:34:19 | Amy 、 // 감사합니다~ 팍팍이해가 됬어요 ㅎㅎ; 그리고 김철진은 그냥 다그러니까 무시 |
2008/04/29 16:21:19 | .. ^ ^ |